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일 쿠투조프 (문단 편집) == 그 후의 이야기 == 1813년 초, 쿠투조프는 병에 걸렸고, 1813년 4월 28일 결국 분츨라우(Bunzlau)에서 6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를 기념하는 동상이 모스크바 포클로나야 언덕과 쿠투조프가 묻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카잔 대성당 앞에 세워졌는데, 카잔 대성당의 동상은 보리스 올롭스키가 제작하였다. 쿠투조프는 대를 이을 남자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유산은 딸과 사위 가문에 분배 되었다.[* 인터넷에서 [[레프 톨스토이]]의 외증조부 라는 헛소리가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딸 중에 한 명인 파라스코비아(Praskovia)가 마트베이 표도로비치 톨스토이(Matvei Feodorovich Tolstoi)와 결혼하긴 했으나 레프 톨스토이의 증조부는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볼콘스키 [[공작(작위)|공작]]으로 쿠투조프가 아니다. 참고로 볼콘스키 가문은 류리코비치 가문의 후예이며 가문의 역사가 8~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러시아 귀족 중 성골 중의 성골로 톨스토이 가문이나 쿠투조프 가문이랑 비교가 안될 정도의 명문이다.] 제정 러시아 육군에서는 수보로프 다음가는 명장으로 일컬어진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자신의 유명한 애가인 <쿠투조프의 묘>에서 그의 활약을 그렸다.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쿠투조프는 교활하고 게으르지만 동시에 현명하고 인내심이 강한 지도자로 그려지고 있다. 1941년~ 1945년간 치러진 [[독소전쟁]]에서 [[소련]] 정부는 쿠투조프 [[훈장(상훈)|훈장]](Order of Kutuzov)을 만들었는데, 이 훈장은 소비에트 연방이 소멸한 이후에도 여전히 러시아에서 가장 높은 군사관련 훈장으로 건재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붉은 군대가 오렐에서 공세를 펼칠 때, 그의 이름을 따서 "쿠투조프 작전"(Орловская Стратегическая Наступательная Операция Кутузов)이라 명명되었다. 현대에는 [[소련]] 해군의 [[스베들로프급 순양함]] 중 미하일 쿠투조프 함이 있다. 제정 러시아의 군인이었음에도 워낙 대영웅으로 대접받았기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존경받았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